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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부활의 부활 방정식 부활 불꽃이 이 탁한 물에서는 픽 꺼져 버릴 것 같았다. 부활한 분의 소식 전달은 본래 어려웠다. 하지만 몇몇 사람에게서는 불이 붙었다. 이들 역시 한 지친 문명의 상징인 아테네의 그 장터에서, 부활 밤의 빛을 받았던 것이다. 그때까지 이들은 가소로울 정도로 적은 소수였다. 그런데 그들 안에서 붙은 불은 아크로폴리스와 아레오파고스, 철학 유파와 밀교 신봉보다 오래갔다. 이들 유산은 정신사 전문가들의 연구 대상이다. 그러나 부활의 불은 여전히 온 세상에서 타고 있다. 세상을 바꾸어 놓는 그리스도의 광휘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하나의 크나큰 은총이다. 이 믿음은 과거에도 쉽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렵고 혼란스러운 세상 한가운데서 오늘도 그대로 부활의 알렐루야를 마.. 더보기
신앙의 부활 빛이 밝혀지기 어려운 오늘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그리스도는 강자에게는 강경하고 약자에게는 부드러웠다. 더 나아가 큰물로도 끌 수 없는 이 부활의 사랑 노래에는 또한 도움과 보살핌과 공감과 동참의 소절도 있다. 더 나아가 큰물로도 끌 수 없는 이 부활의 사랑 노래에는 또한 도움과 보살핌과 공감과 동참의 소절도 있다. 강물도 휩쓸어 가지 못하는 사랑의 이 소절을 선창 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언제나 하느님의 가락이고 이를 노래하는 곳이면 어디나 구원하시는 하느님이 멀리 계시지 않는다. 계시의 하느님은 당신 창조에 이 가락을, 여러 소절과 변주로, 때론 조용하게 때론 아주 강하게 작곡해 넣은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이 가락을 한 장난꾸러기를 시켜 비밀경찰 감옥 안까지 들려주었다. 사랑은 죽음처럼 힘이 억센 것, 사랑의 화살은 불로 된.. 더보기
부활을 알리는 가락 "나는 당신 이름을 겨레에게 전하고 그 모임 한가운데서 주를 찬미하오리니 가난한 이를 배부르게 먹이리이다. 야훼를 찾는 사람들이 당신을 기리며, 세상의 모든 권세가들이 그분께 경배하고 나의 영혼은 주님을 위하여 살리라. 나의 후예는 당신을 섬기며 미래의 세대에게 주를 들어 말하오리라. " 앞에서 성금요일에 번갯빛이 비친다고 말한 대로 낭패로 보이던 그날이 실제로는 이미 부활의 조짐으로 차 있다. 시편 22를 다 읽으면 그분께서 다 이루셨다.라는 끝마디로 맺는다. 요한복음서 19장 30절에 나오는 예수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가 아닌가. 예수가 이 예언적인 시편의 첫마디와 끝마디를 기도함으로써 이 시편에 담긴 내용 전부가 바로 이 자리에서 지금 실현되고 있음을 밝혔다는 점을 거의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 .. 더보기
성금요일 밤을 비춘 번갯불 골고타에 드리우는 밤과 함께 우리는 구세사의 가장 깊은 어두움에 다다른다. 여기서는 외로운 십자가 형틀을 중심으로 증오와 선동, 잔학과 비정, 경악과 경직된 고통이 한데 엉겨 있다. 그 실상은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미화하며 애써 묘사해 놓은 모습보다는 사뭇 참혹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성금요일 묵상에서 그저 어두움의 숨 막히는 시간 안에 갇혀 있고 싶지는 않다. 유심히 바라보면 이 전율의 한밤에, 밝은 번개가 마치 이른 부활 번갯불처럼 번쩍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먹구름 속의 이 빛을 조금 따라가 보겠다. 이렇게 출발할 수도 있겠다. 저마다 서로 전혀 다른 동기로 나자렛 예수를 반대하는 무리는 네 패가 있었는데, 이들이 사악하게 작당하여 예수의 낭패를 재촉하였다. 첫째 집단은 역시 예루살렘의 고위.. 더보기
겐네사렛호숫가에 자리한 탑가 예수와 혹 동조하거나 강권 행사를 꺼리는 의원들에게는 틀림없이 소집령을 전하지 않아, 니코데모 같은 이는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증인도 두 사람씩 준비시켜야 하는 터에 부득이 몹시 서두르다 보니 재판 준비가 허술했던 듯합니다. 하기야 막강한 대사제들은 수하에 자기네 뜻대로 그런 증인 노릇을 거침없이 시킬 만한 자들을 얼마든지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는 그 증인 등장이라는 것이 빗나갔습니다. 여러 쌍의 증인이 차례로 등자했지만 그들이 예수를 거슬러 한 말들은 서로 맞지가 않았습니다. 복음서에 뚜렷이 언급된 마지막으로 나선 한 쌍의 증인도 성전 파괴 운운하며 예수를 고발했으나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재판은 극히 곤혹스러운 고비에 이릅니다. 증인들이 실패하면 유.. 더보기
이 사람은 누구인가 사람 본연의 됨됨이를, 그 성품의 눈여겨볼 점들과 인격의 진면목을 언제 가장 잘 알아볼 수 있을가. 많은 경우, 짓누르는 압박을 받고 있어, 체통이나 소위 이미지, 무슨 칭호나 명성, 재력이나 인맥 등이 다 무의미해지고 떨어져 나가 이른바 사회적 지위 따위는 아주 소용이 없어졌을 때에 제대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참다운 친구는 역경에서 드러난다는 격언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극심한 곤경에 처해 있을 때에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위대함을 드러내는 사람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보게 되는가. 그런 상황에서는 전혀 짐작도 않던 드문 덕성이 드러나곤 하는데 공익을 위한 투신, 사생활과 건강마저 바친 삶, 몰아적 마음가짐, 좌절의 수용, 정신적 역량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본연을 알아보려 한다면.. 더보기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예수님 성목요일 저녁은 실로 극적이었습니다. 어둠과 빛, 죽음의 예감과 형제적 유대, 배신과 성찬, 제자들의 좁은 도량과 온 세상을 품는 구세주의 사랑, 자리다툼과 위안의 언약. 그리고 이 만찬 끝에 올리브 동산으로 나가면서 찬미가를 부릅니다. 마르코는 이 점을 분명히 적었습니다. 대할렐이라고 하는 이 찬미가에 어떤 시편들이 담겨 있는지 이제는 알려져 있습니다. 이 찬미가는 과월절 양을 먹는 의식에 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올리브 동산을 향해 걸으면서 부른 이 찬미가에는 시편 116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시편을 읽다 보면 그것은 마치 이날 밤에 일어날 일의 서곡같이 들립니다. "죽음의 올가미가 나를 에우고 저승의 공포가 나를 덮쳐 나는 고난과 근심에 사로잡혔네. 이에 나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네... 더보기
올리브동산에서 우리는 이 그리스도 묵상에서 다른 어떤 것도 가볍게 여겨지는 그러한 주제에 다가섭니다. 고난이 그것입니다. 살다 보면 불쾌하거나 역겨운 일도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할 말을 잃게 하는 형태의 인간 고통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가차 없이 죽음으로 몰아붙이는 자연 재난의 파급일 수도 있고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인간의 잔악이나 무책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이없는 묵언 중에 이런 우울한 의문이 고개를 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허락하는 신이라면 무슨 신인가. 믿음의 이러한 흔들림은 인류의 대재앙을 보고 일어날 수도 있고, 개인으로서 겪는 비운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개인으로서 겪는 비운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엄마를 아이들에게서 앗아 간다면, 에이즈가 가족과 고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