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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무화과와 석류 (feat. 이스라엘 시대)


돌 무화과는 이스라엘 토종 무화과입니다. 아모 7,14에서 예언자는 자신이 목자이며 이 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나무를 잘 가꿔 좋은 열매를 거두려면 열매가 채 익지 않았을 때 나무에 올라가 송곳처럼 생긴 연장으로 일일이 열매에 구멍을 뚫어줘야 합니다. 


요즘에도 늦여름이면 나무에 올라가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키 작은 자캐오가 예리코를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려고 돌 무화과에 올라갈 생각을 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현대 주석학자들은 자캐오가 돌 무화과 가지에 앉은 것에서 흥미로운 상징적 연관성을 보았습니다. 돌 무화과 히브리어는 시크마이며, 그 어원은 회복하다는 뜻인데 나무가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살아 있으면 다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자캐오를 보고 나무에서 내려오라고 하신 것은 당시 멸시받던 사람들도 이처럼 새롭게 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색깔로 보든 모양새로 보든 성지에서 나는 모든 과일 가운데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석류 모양의 예쁜 장식이 많이 쓰였는데, 특히 대사제 겉옷에 금방울과 함께 장식을 달기도 했습니다. 이 장식은 제1성전 안, 지성소 문밖에 서 있는 기둥 머리에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주로 은으로 세공하여 만드는 것은 오늘날에도 옛 성전을 기억하기 위해 토라 두루마리에 장식합니다. 기원전 2세기 중반에서 1세기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린 유다 왕조 하스모네아가는 석류가 새겨진 동전을 주조하여 솔로몬 성전의 영화를 기억했습니다. 후에 로마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3개가 새겨진 동전이 나왔습니다. 청동기 시대도 시인 게제르에서 그 껍질이 출토되었습니다. 

민수 20,5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과일도 나지 않은 땅으로 데려왔다고 불평합니다. 그들은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서 가지고 온 과일 가운데 석류가 있는 것을 보고 안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원전 1600년경 힉소스 침입 때 이집트에 들여온 후 즐겨 먹는 과일이 되었습니다. 기원전 13세기의 이집트 파피루스에는 파라오가 주최하는 환영만찬 준비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식단에는 콩과 무화과와 시리아산 석류와 사과가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주로 과일로 먹었는데 로마의 음식저술가 콜루멜라에 따르면 피클로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쓰임새도 다양해서 껍질은 장내 기생충 구제로, 꽃은 빨간색 염료로, 노란 속껍질은 가죽의 얼룩을 닦아내는 데 쓰였습니다. 

다른 일곱 가지 주요 농작물과 마찬가지로 파스카와 오순절 사이에 꽃이 피고 여름이 끝날 무렵 익었으며 강르 추수축제인 초막절에 성전에 바치는 봉헌물로 적합한 과일이었습니다.  가지는 파스카 때 예루살렘에서 번제물로 바치는 양을 꿰는 꼬챙이로 썼습니다. 그것은 가지에 물기를 많이 품고 있어 장작으로 때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였습니다. 

솔로몬은 석류의 아름다움을 너울 뒤로 얼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의 두 볼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아가 6,11은 새빨간 꽃봉오리가 맺히는 것으로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지금도 여전히 갈릴래야와 유다 지방 구릉을 뒤덮는 봄꽃 가운데 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요엘 1,12와 하까 2,19에서는 일곱 가지 농작물과 나무가 시들어 말라버리는 것을 유배의 상징으로 표현합니다. 또한 왕관 장식에도 사용되었으며 그래서 토라의 왕관이라고 부르는 모세오경과도 연관시켰습니다. 

씨가 많은 것은 가득 찬 씨만큼 덕행으로 가득하는 옛 탈무드 표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 표현은 오늘날까지도 사용됩니다. 한 현인은 솔로몬의 노래에 대한 해석에서 교실에 줄지어 낮은 어린이들을 빽빽하게 들어찬 알에 비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