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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표징으로서의 포도주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예고하는 이사 5장과 에제 17,5-8에는 포도를 재배하거나 농사를 짓는 농부를 들어 비유하며 포도재배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말합니다. 땅을 고르고, 심고, 나쁜 포도를 쳐내는 것에 대한 포조밭 노래는 농부들의 달력과 같은데, 하느님이 보호하심에도 그 결과는 실망스러움을 노래합니다. 

 

포도나무는 심은 지 5년이 지나야 열매를 냅니다. 제대로 된 열매를 얻으려면 꼬박 10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들의 평균수명이 기껏해야 40세 정도였던 그때에 인생의 1/66을 포도밭을 가꾸는 데 보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착민의 경우이고 유목민의 삶은 달랐습니다. 

 

예레미야는 레캅 집안 사람들의 예를 들어 유목생활을 말하면서 그들은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씨앗을 뿌리거나 포도밭을 가꾸지 않고 평생 천막에서 지내며 금욕적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포도나무의 경작은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는 것은 솔로몬 왕국의 평화스러운 나날을 묘사합니다.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는 말은 전쟁이 끝났음을 암시합니다. 

아시리아가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지휘관 랍사케는 포위당한 주민들에게 항복하고 나오면 빵과 포도밭의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유혹합니다. 철마나 열리는 작고 시어 맛보기조차 끔찍한 포도를 먹는 일은 범죄의 상징입니다. 

 

식초 맛이 나는 질 낮은 타마드 포도주는 포도에 물을 섞어 밟아서 만든 것으로 대부분 마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을 섞지 않은 포도주는 맛이 진했는데, 묵시 14,10은 이것을 은유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 걸까요? 여기에는 화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포도주는 발효될 때 생긴 탄산가스가 모두 날아가기 전에 새 가죽부대에 옮겨 넣어야 합니다. 탄력이 없는 헌 가죽부대에 담으면 포도주가 발효하면서 술 부대 솔기가 터져 모두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새 가죽은 신축성이 있기 때문에 탄산가스가 발생해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습니다. 

욥의 친구 엘리후는 내 속은 바람구멍 없는 술통 같고 새 술 부대처럼 터져버리려 하네하고 실망스러움을 표현합니다. 

 

가미한 포도주 

아모 9,13과 요엘 1,5에서 말하는 새 포도주는 발효주입니다. 알코올 농도가 14퍼센트에 이르면 발효가 멈추고 효모가 죽습니다. 단 포도주를 만들려면 건포도나 꿀 또는 단맛을 내는 과일즙을 넣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아가 8,2와 이사 65,11과 잠언 23,30에 나오는 석류주일 것입니다. 옛 자료 콜루멜라는 포도주에 향을 가미하려면 여러 향료 중에서도 아이리스를 으깨어 넣거나 카더멈과 사프란을 넣으라고 권합니다. 아가 8,2도 여러 향신료를 넣은 포도주를 언급합니다. 마르 15,23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 몰약을 탄 포도주를 드렸다고 전합니다. 

 

맥주와 포도주 

취하게 하는 음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맥주입니다. 포도가 잘 자라지 않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맥주 재료로 사용되는 보리를 재배하면서 처음으로 맥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맥주 만드는 법이 나오는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4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약제사가 쓴 것으로, 오늘날 수단에서 제조하는 부즈 만드는 법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맥주가 대중화되지 못했고, 그리스 사람들은 야만인이나 마시는 음료라고 하여 경멸했습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예수 시대의 이스라엘 주민들은 대추야자 술을 즐겼을 것이라고 합니다. 대추야자는 포도보다 당이 많아 밟아서 으깨면 즙이 많아 나오고 껍질에 있는 효모 성분은 발효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멸종된 발삼나무와 사과, 무화과와 석류로 만든 과일주도 있습니다. 오늘날 늦여름 갈릴래아나 유다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구주콩나무 열매로도 술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생수 

성지의 건조한 기후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품목 가운데 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창세 26,20-22에서 보듯이 남녀 족장시대에 아브라함과 이사악은 네겝 지방 브에르 세방에 있는 우물의 소유권을 두고 그라르의 목자들과 싸웠습니다. 우물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장차 이사악의 아내가 될 사람을 우물가에서 만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야곱이 라헬을 만난 것도 양들에게 물을 먹이러 우물가에 왔을 때였습니다. 

텔 브에르 세바의 유적지에는 적어도 3천 년 전쯤 팠을것으로 보이는 깊이가 210미터나 되는 우물이 있습니다. 샘에서 물을 길어 마당에 있는 독에 채워놓고 필요할 때마다 썼을 큰 물동이들이 이스라엘 곳곳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사막을 헤매는 동안 물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르피딤에서 목이 말랐을 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바위를 쳐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카데스에서는 바위에게 명령하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바위를 쳤습니다. 하느님께 불순명한 이 일로 모세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저수지를 만들어 지하수나 흐르는 물을 모으는 정교한 시설을 만들었다는 것은 노동력을 모으고 임금을 지불하는 중앙정부가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기술자들이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유적들이 예루살렘 기브온 게제르 므기또 하초르 브에르 세바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갱도 밑바닥까지 이어진 층계를 내려가보면 지하에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물을 저장해 둘 경우 박테리아가 번식해 건강상 위험이 컸을 것이라고 하지만 박테리아는 빛이 있어야 살 수 있기에 수조 뚜껑을 덮어 번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포도주에 물을 섞어 마셨는데, 이것은 오랫동안 저장된 물에 있는 박테리아를 죽이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물은 또한 살아가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했기에 성경의 다른 어떤 상징보다 중요했습니다. 예언서와 신약성경에는 물이 구원의 상징이요 생명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께서도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면서 생수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물로 씻는다는 것은 위생은 물론 내적 정화를 상징했습니다. 유대교에서 유래한 침례 예식은 세례자 요한을 통해 그리스도교로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