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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곡식과 빵 -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이사악은 씨를 뿌려 수확을 백배나 거두었습니다. 근동지방에서는 이미 몇천 년 전부터 곡식을 경작해 왔습니다. 갈릴래야 호숫가 근처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불에 탄 보리알과 밀알이 출토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예리코의 가장 오래된 유적지에서 불에탄 보리와 밀알을 찾아냈습니다. 메마른 예리코의 오아시스에서는 자라지 않는 이 곡식들은 유다나 사미라 산간 지방에서 이주해 온 농부들이 가져 온 것으로 보입니다. 

 

신명 8,8에 나오는 주요 농작물 중 밀과 보리가 끼어있는 것은 밀 보리 농사가 잘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밀은 성지가 원산지로 유전자적으로 품종이 같습니다. 

식물학자들은 성지에서 재배되는 품종을 에머 밀 또는 어머니 밀 이라고 부릅니다. 이 이름은 20세기 초 갈릴래아 위쪽 산간지방에서 자라는 것을 발견한 유다인 농학자 아론 아론손이 붙인 것입니다. 야생 밀은 세월이 흐르면서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종자가 바뀌었습니다. 원조에 가까운 품종 개량으로 오늘날 탁월한 품종의 밀을 경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가축사료로 쓴 보리 역시 이스라엘 타보르 산이 원산지입니다. 보리는 밀의 반값 정도였고, 이 가격은 아람 왕 벤 하닷이 사마리아를 포위한 장면에 나옵니다.

탈무드 샤바트는 보리빵을 먹을 수 있는데도 밀빵을 먹는 사람은 나무를 베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어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낭비하면 죄를 짓는다는 뜻입니다.

보리는 글루텐과 가루를 부풀게 하는 단백질 성문이 적어 거칠고 딱딱하며 씹기 어렵고 소화도 잘 안되어 가뭄이 들어 어려울 때 먹는 마지막 먹을거리였습니다. 보리가 바닥나면 싸움이 와서 문을 두드린다고 했습니다.

 

생명의 양식  

사람들은 인간의 기본 양식으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미네랄, 비타민이 들어 있는 잘 익은 곡식을 완전식품으로 여겼습니다. 이집트 아라비아어로 빵을 뜻하는 아쉬의 어근은 생명이며 인류의 빵이라고도 하는데 이집트 여신 오시리스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 같습니다. 히타이트족이 숭배한 폭풍과 달 신이나 가나안 필리스티아의 다곤처럼 고대 근동지방의 신들은 곡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 갈릴래야 북쪽 벳사이다를 발굴하는 도중 기원전 9-8세기 성읍 인구에서 폭풍과 달의 석비가 출토되었습니다. 이곳은 종교의식이 거행되던 타작마당이었을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곡식을 날로 먹으면 소화가 잘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익혀 먹을 수 있으며, 물에 끓이면 죽이 되고 구우면 빵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곡식이 젖어 싹이 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고대 농부들은 발효라든가 저장된 탄수화물이 어떻게 당분으로 변하는지와 같은 화학작용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촉촉이 젖어 싹이 난 보리를 볶아 다루를 내고 물을 부은 후 누룩을 넣어 적당한 조건에 두면 맥주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과정이 이집트의 점토판과 메소포타미아 원본에 나타납니다. 

 

덜 여물어 부드러운 곡식은 날것으로도 먹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이삭을 뜯어 먹은 때는 이른 봄이었습니다. 이 낟알을 카르멜이라고 하는데 이삭이라는 뜻이며 복아 먹기도 했습니다. 밀을 볶으면 녹말이 아주 단 덱스트린으로 변합니다. 볶은 밀알은 룻 2,14에도 나옵니다. 

이사이도 엘리 골짜기에서 필리스티아 군대와 대적하는 형들에게 빵과 볶은 밀을 보냈습니다. 다윗 왕이 압살롬과 싸우러 나갔을 때 암몬 자손들이 다윗 일행에게 대접한 것도 볶은 밀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성전을 짓기 위해 향백나무를 받는 대신 밀 이만 코르를 보냈고 벌목꾼들한테는 빻은 밀 이만 코르와 보리 이만 코르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축복을 헤아리는 오메르 

레위 23,9-16에는 파스카와 관련된 특별한 예식으로 햇곡식을 바치는 오메르 봉헌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메르는 곡식을 재는 단위로, 1오메르는 약 22리터 정도입니다. 

파스카 축제 다음날을 기점으로 오십일이 되는 날에는 오순절 축제를 지냈습니다. 이날에는 잘 익은 '햇곡식'을 지성소에 바치고 풍성한 추수를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축복을 빌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주간 축제와 시나이에서 십계명을 주신 것을 연계시켰습니다. 

주간 축제 때 십계명을 받도록 한 것은 라삐식 가정입니다. 이 두 사건의 연결은 십계명을 주는 이야기에 근거합니다. 바로 그날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날, 곧 오순절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장례예식도 오메르로 셈하던 시기와 관계가 있는데, 성경식물원의 노가 하류베니는 그 당시 성지의 기후 변화가 심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작물은 오십 일동안 내리는 비와 우박과 무더위를 거치면서 식습니다. 풍년이 들면 보리를 추수하는 파스카와 밀을 추수하는 오순절에 감사제물을 하느님께 돌려드립니다. 예레미야는 밀을 거두고도 제때에 비를 내려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책망했습니다. 보리 수확기에 밀은 아직 덜 여문 상태이고, 오순절에 밀을 수확할 때쯤엔 여름 과일이 설익은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