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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마카베오 시대 자세히 알아보기

마카베오기 상권과 하권은 서로 완전히 다른 별개의 책입니다. 그럼에도 두 권 모두 마카베오기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이유는 두 권의 시대적 배경이 같고, 일부분 같은 사건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카베오기는 참 하느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지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곧 히브리인들이 셀레우코스 왕조의 박해에 저항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집트의 통치자들은 종교적 차원에서는 유다인들에게 관대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지배자가 된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는 유다인들에게 그리스 문화를 수용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특히 기원전 175-164년에 시리아를 통치한 안티오코스 4세는 유다인을 포함한 모든 피지배 민족에게 그리스 문화와 종교를 강제로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다른 민족들은 다신교를 신봉했기 때문에 그리스 신들을 받아들이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에게는 이스라엘의 유일하고 참된 하느님 이외에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자신들의 종교를 완전히 부정하는 배교를 의미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과 전능이 수없이 드러난 자신들의 역사 전체를 부정하는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헬레니즘의 충돌 

구약성경의 막이 내리기 전 이스라엘은 또다시 사납게 소용돌이치는 여울에 휘말리게 됩니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가 이스라엘에 그리스 문명을 주입하는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혼란과 박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는 강력한 헬레니즘의 기수였습니다. 그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와의 오랜 전쟁으로 재정이 고갈되자 셀레우코스 왕국을 통치하기 위해 유다인들에게 헬레니즘 문화뿐 아니라 과도한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가장 거룩한 직책인 대사제직을 뇌물을 가장 많이 바치는 사람에게 내어주기 위해 경매에 부쳤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할례를 베푸는 어머니를 사형시키고, 토라를 불사르고 우상인 제우스 제단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고 이교신 숭상을 강요합니다. 이러한 종교박해를 참을 수 없었던 하시드인 중 하나인 마타티아스는 유다인들을 자기 주위에 모아 지하운동과 저항운동을 시작합니다. 이 운동이 그의 아들들과 후예들에 의해 이어집니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헬레니즘 정책에 대항하는역사속에서 마카베오기 상, 하, 다니엘서,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등이 나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은 셀레우코스 통치자들의 헬레니즘화 정책에 맞선 유다인들의 저항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항쟁은 초기부터 사제 가문에 속한 마타티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마타티아스와 다섯 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유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가 더럽힌 성전을 정화하고 기원전 164년에 성전 봉헌 축제를 거행했습니다. 이 사건을 주도한 지도자가 바로 유다입니다. 

시몬 

시리아 임금 데메트리오스 2세에게서 유다인의 지도자로서의 모든 지위를 인정받아 유다 민족의 완전한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42년에는 백성에게서 대사제의 지위를 공적으로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유다인의 최고 지도자인 대사제 직분을 세습할 수 있게 되면서 하스몬 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스몬 왕조를 연 지도자가 바로 시몬입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에는 헬레니즘 문화를 강요한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에 저항한 나이 많은 율법학자 엘아자르의 순교와 어느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 저자는 그 어떤 폭력도 하느님의 선민에게서 신앙을 버리게 할 수 없다는 것과 목숨을 바쳐서라도 신앙을 고수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유다인들은 유다 마카벵호의 지휘로 원수들의 박해를 이겨냈는데 이 힘겨운 시련은 그들의 정체성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유다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그들의 정체성은 신앙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참된 선민이고 아브라함의 진정한 자손이며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제대로 간직한 이들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