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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베버 수도원장: 선교의 국가, 정치적 의미

열흘 간의 아덴 체류는 일정에 없던 것이었다. 증기선은 우리를 이곳에 내려 놓고 출항지로 서둘러 돌아가 버렸다. 독일령 동아프리카로 향하는 다른 증기선을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1905년 나의 정기 시찰이 현지 폭동 때문에 돌연 중단되었기로, 이번 기회에 계속할까 한다. 

분화구 벽에 에웨싸인 아덴의 열기는 마녀의 솥단지처럼 뜨거웠다. 심신이 늘어지고 지친다. 그래도 충분히 땀 흘릴 가치가 있는 시간이다. 

저수지 석벽을 타고 올랐다. 갈라진 협곡의 분화구 벽을 따라 올라가며 계단식으로 지은 복잡한 건축물이었다. 나는 이 장엄한 건축물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 벽 위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빛의 홍수에 눈이 피곤하여 먼 바다 푸른 파도를 바라보았다. 눈이 다소 편안해지면서 사념도 먼 과거로 되돌아갔다. 이 기념비적 건축물에는 신비의 너울이 드리워져 있다. 대단한 문명을 누리던 민족이 설계하고 시공했을 텐데, 도대체 누구였을가? 고대 페르시아인? 로마인? 해답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어느 문화민족이 이곳을 거점으로 그들의 문화를 전파하려 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강수량도 적고 때로는 5-7년 동안 가뭄이 지속될 대도 있으니 계곡 안쪽에 이처럼 거대한 저수지를 축조할 엄두도 못 내겠지만, 당시의 기후 조건은 지금보다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더는 파고들 단서가 없다. 어느 눈 밝은 이가 이곳의 가치를 알아내어 강인한 의지로 자연에서 삶의 조건을 창출해 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산허리를 뚫어 수로를 낸 무모한 발상쯤이야 현대 기술이 바닷물을 증류시킴으로써 간단히 극복해 버렸지만, 아덴을 국제 교역로의 거점으로 보는 시각은 변함이 없다. 이곳에서도 영국은 예리한 선견지명으로 자국에 유리한 상황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이 도시를 거점으로 삼아 극동이나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와 교역하려면 누구를 막론하고 이곳에서 영국의 허가증을 먼저 받아야 한다. 아프리카 쪽이 동양보다는 아무래도 쉬웠다. 영국은 이 문제를 혼자 조율하여 전리품을 독식하고 싶었겠지만, 운좋게 의화단 사건을 전후하여 우리 독일도 그런 기회를 딱 한 번 가진 바 있다. 

식민지가 소유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독일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돈이 더 들기 전에 식민지를 청산해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조언은 점차 잦아들고, 지금은 대체로 용인하는 추세다. "애초에 식민지를 소유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그랬다면 식민지 관리와 해군력 증강에 드는 막대한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소유한 이상, 해외 점유물을 유지 발전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신성한 의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과연 그럴까? 

 식민지가 국가 재산의 일부이기는 하나, 결코 국익의 핵심은 아니다. 물론 국익 창출의 단초를 제공한 경우는 있었을 것이다. 식민지는, 독일이 제 손에 떨어진 지구 상의 어느 국가로 서둘러 진출하여 그곳에서 독일인의 역량과 끈기로 세계 문화의 한몫을 담당하도록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성실과 정직, 신의와 양심으로 대변되는 민족성, 학문과 기술 분야에서 이룩한 고도의 성취, 우리가 누리는 정치적 명망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그동안 문화적 과제의 큰 몫을 할당받지 못한 것은 신의 섭리 때문인가? 바야흐로 세계 각국이 문호를 개방하고 유럽 문화를 받아들이는 이 마당에, 우리도 그 그 과제를 수행할 길을 개척해야 하지 않겠는가? 독일인들을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인은 태생적 방랑벽도 아니요, 적어도 삶의 한 시기쯤을 외국에서 보내고 싶은 본능적 충동도 아니다. 그것은, 의무감과 경제적 절박함이다. 

의무감. 다른 민족들이 가지지 못한 문화적 자산을 그들과 나누는 것은 신성한 의무다. 중대사의 한 축이 문화 사업이라면, 다른 한 축은 절체절명의 필요성이었다. 국가 발전이 완전히 정체되어 민족이 병적 쇠약 상태에 빠지지 않으려면 독일도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로 나가지 않았다면 독일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독일제국 통합 후 4천만 명까지 증가한 인구 중 2,500만 명의 부양이 불투명해질 전망이었다. 식량 수입으로 벌충하자니 머지않아 국고가 바닥날게 뻔했다. 그렇다면, 무역선과 열차가 식량을 싣고 올 때 돈도 함께 싣고 와야 한다. 세계시장에 독일 제품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산업과 수백만 노동자들은 그렇게 생존했다. 국내 생산이 불가능한 원자재들은 해외에서 대량 조달되었다.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독일의 국내 발전은 동시에 세계 진출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모든 것이 그리되지 않았더라면 해마다 늘어난 인구는 생존을 위해 미국으로든 다른 어느 나라로든 이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독일은 지금도 1870년 수준에 정체되어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낯선 타국에서 이주민의 후예로 전락했을 1,500만 국민이나, 남은 2,500만 국민이나, 조국 독일을 영원히 잃을 뻔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독일 이주민들이 영국인들처럼 타향을 고향처럼 편히 생각하고 세계를 바로 자신의 거대한 유산으로 여기면서도 '더 가까운' 조국과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다면야, 우리는 독일인 전체의 이익을 생각해서라도 참고 견디겠다. 그러나 목하 독일 이주민들은 조국과 절연하고 타국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고 있었다. 그들의 노력 봉사로 타국은 점점 강대해지는데, 으얷이 독일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이주민이 매년 2만 명까지 감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단은 고무적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오직 독일의 대외적 발전이었다. 한편, 국내 인구 증가율의 둔화는 독일의 발전에 본질적으로 기여하여 독일은 합당한 열강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배 한 척 보유하기 전에도 독일은 이미 명망 있는 세계 열강 가운데 하나였다"라고 윈스턴 처칠 경이 말한 것은 아마, 독일이 현상 유지를 통해 그저 명망 있는 열강으로 머물러 주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가 문을 활짝 열자 서구 문화는 거세게 밀어닥쳤다. 이제 독일 정신도 앵글로색슨과 나란히 세계 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게 될 터였다. '장사꾼 근성'은 열강의 반열에서 소외되어 있던 독일이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좌시하려 들지 않았다. 아무리 제 사업이 번창해도 남의 사업이 잘되는 꼴은 못 보는 것이다. 독일의 교역이 일취월장하여 영국의 10년 전 수준인 170억 달러를 돌파하자 영국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영국도 괄목할 만한 교역 확장을 이룩한 것이 사실이나, 그것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20년 전만 해도 독일 국기 색깔이 낯설었던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와 아프리카 연안 항구의 배에서 독일 국기가 수도 없이 나부낄 때, 영국은 열강으로서의 위상을 흔들 수도 있을 이런 상황을 시샘했다. 독일도 물러설 데가 없었다. 우리 독일인들이 조국과 조국의 위대함을 가치롭게 생각하는 마음은, 영국인들이 그들의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패권 다툼은 경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신적 영향력은 경제적 영향력 형성에 중요한 전제가 되기 때문에, 민족 간의 정신적 패권 다툼이야말로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독일의 정신은 경제적 발전을 따라가지 못했다. 독일인들은 경제 분야에서 제각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으나, 이 개인의 우월성을 국가적 이익을 위해 쓰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독일적 철저성이 이룩해 낸 정밀과학을 토대로 삼아 독일의 기술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영국인의 전문 영역을 장악했지만, 독일 정신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독일 정신이 확실한 우위를 인정받은 학문 분야에서조차, 성인교육 학교교육을 막론하고, 독일의 역량은 최근까지 좌절을 거듭했다. 교육이라는 이 강력한 수단의 도움을 받아, 민족들을 정신적으로 정복하고 문화적으로 복속시킬 즉각적이고 결정적인 공세를 취해야 한다. 우리보다 훨씬 뒤처져 있던 다른 나라들은 그간에 많은 식민지를 확보했다. 독일은 너무 늦게 출발했고 독일에게 세계는 너무 생경해 보였다. 독일인이 해외에서 도모하는 일은 개인 사업의 성격이 짗다. 독일인의 사업과 생산품에는 조국이라는 뒷배가 없다. 그래서 능력이 시들고 창업이 위축되었다. 독일이 여태 다른 나라들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나라들은 동력은 미약하나 고도의 국가관을 표출하는 단결력으로 무장하고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진정한 애국심은 개인의 특권이 아니라 만인의 의무다.